인류의 운명이 걸린 무색 콜라(?) 개발 프로젝트

독일이 항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1945년 6월 초,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가 보낸 한 통의 문건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베를린에서 열린 연합군 지휘부와 소련군 수뇌부 간에 있었던 회담의 결과 보고서였다.


베를린 회담



그런데 전후 질서 구축에 관한 중요 사항은 이미 위정자들이 결정한 상태여서 전선에서 전쟁을 지휘하던 군인 간에 협의할 특별한 현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동안 명성만 들어왔던 상대방 최고 지휘관을 직접 마주 대한 것이 최대 관심사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잘 싸웠다는 칭찬이 서로 오고 갔지만, 그들은 결코 상대방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전후, 경쟁 대상이 확실한 상대방에 대한 사소한 정보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젠하워의 보고서는 회담 내용보다 소련군 지휘부를 분석하는데 의의가 있었다.


아이젠하워


그런데 보고서를 꼼꼼히 읽던 트루먼은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였다. 한 소련군 지휘관이 콜라를 요구했는데,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보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회의 도중 휴식 시간에 '아이젠하워'가 권한 코카콜라를 처음 마셔본 소련 장군이 그 맛을 잊지 못하여 다음 날 사적으로 요청을 한 것인데, 문제는 그가 공개적으로 콜라를 즐기면 나중에 자본주의에 물든 변절자라는 꼬투리를 잡힐까 봐 전전긍긍하였다는 점이었다.



투르먼은 천만 대군을 지휘한 소련군 최고 지휘관마저 음료수를 마시는데 눈치를 보아야 할 만큼 소련이 경직된 체제라는 것을 깨닫고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약점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았고, 즉시 보드카로 보일 수 있도록 무색의 콜라를 개발하라는 지시가 코카콜라 사에 전달되었다. 그러면서 이는 '인류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프로젝트'라는 부연 설명을 붙였다.



이렇게 단 한 사람을 위해 유일무이한 무색 콜라가 개발되었고, 즉시 30상자 분량이 보드카 병에 담겨 대서양을 건너가 그에게 전달되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이후의 세계사를 살펴본다면 인류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수사를 언급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이후 콜라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극히 사적인 요구를 미국이 국가적인 문제로 인식했을 만큼 그의 위상은 상당히 컸다.


독소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전후 냉전 시기에 소련의 정치인으로도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게오르기 주코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게오르기 주코프


그는 전쟁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소련의 장군이었다는 사실 때문인데, 오랫동안 냉전의 최일선이었던 우리나라에서 소련의 인물이나 그들의 활약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다. 특히 이들의 전쟁에서 지구 반 바퀴 떨어진 우리는 철저히 제삼자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 보니 내용을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많은 이들이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연합국이 독일을 굴복시킨 것으로 알고 있지만, 승리의 1등 공신은 무려 2,000만 명의 국민을 희생시키며 처절히 싸웠던 소련이었다.



냉전으로 인해 정보가 막히고 미국을 주인공으로 삼은 할리우드 영화를 접하며 우리는 이런 내용을 제대로 몰랐다. 그래서 제2차 대전 당시의 장군이라면 아이젠하워, 몽고메리, 패튼 같은 승장이나 롬멜처럼 극적 요소가 풍부한 인물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승전국이었던 소련 장군들에 대한 정보는 무지에 가까웠다.



그래서 군사적 업적만 놓고 본다면 주코프는 당연히 가장 먼저 언급될 만한 인물 중 하나였지만 이처럼 군사 외적인 이유 때문에 알기가 어려운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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