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유랑 민족 쿠르드족이 한국 전쟁에 참전한 사연

보통 '터키' 하면 떠오르는 것이 형제의 나라이다. 그 이유 중 하나인 '한국 전쟁' 당시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1만 4천936명) 파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면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또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 한국 전쟁 당시 파병됐던 터키 병력의 반 이상이 터키인이 아닌 '쿠르드족'이었단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터키의 '소수민족'을 취재하던 한 기자로부터 시작된다.



터키의 소수민족에 대한 취재를 하던 기자는 우연찮게 '쿠르드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된다. 자신은 한국 전쟁 참전 용사였으며, 당시 한국으로 파병된 참전용사의 60% 이상이 쿠르드족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접한 기자는 진실을 찾기 위해 쿠르드족을 찾아 나서고, 수소문 끝에 이들을 찾게 된다.



위 사진의 인물은 '케말 압데'다.

한국에서 촬영 왔다고 하니 6.25전쟁 당시 받았던 훈장을 달고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취재진을 보고 처음으로 한 말은 「영등포, 서울, 인천, 부산, 이리와등 서툰 한국말이었다. 케말 압데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징집 당시 상황이 쿠르드말만 했지 터키말은 전혀 못하는 상태에서 18살에 강제 징집됐다. 터키말은 한국에서 배운 것이다. 터키에서 3개월 훈련받고 6천 명이 파병됐는데 그중에 대부분이 쿠르드족이었고 10% 정도가 터키인이었다. 터기인들의 대부분이 간부 또는 지휘관이었다."


"한국에 대해서 기억나는 건 너무 가난하고 비위생적이었다는 것과 사람들이 순박했고 장례식장에서 나던 '아이고~'라던 곡소리였다. 전쟁이 끝나고 2년이 지나서야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받은 거라곤 참전기념메달과 훈장이 전부였다. 월급도 없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향에 살고 있다."



위 사진의 인물은 '쿠레무사'라는 마을에 살고 있는 참전용사 '야스메 이세'다.



이분 역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징집되어 한국에 보내졌는데, 소대원 50명 중 절반이 쿠르드족이었다고 증언한다. 휴전을 앞두고 '고지전'과 같은 치열한 전투에 투입됐다고 한다. 당시 병사의 월급은 80달러였는데 자신이 받은 금액은 5달러 미만이었다고 한다. 전후에도 보상 없이 이렇게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2012년 생을 마감한 '할릴 테멘'이다.

그는 쿠르드족의 한국전 참전에 대해서 책을 내려고 했으나 터키 정부의 압박으로 실패했고, 취재 온 한국기자에게 여태 모아온 자료를 공개했다.


'할린 테멘'의 경우는 강제징집이 아닌 터키군에 자원입대하여 한국전에 참전하게 된 경우다. 그 당시 터키 군부에서 '터키인은 싸울줄 모르지만 용감한 쿠르드족은 싸우는 방법을 안다'라는 연설로 이들을 꼬드겼고, 이에 혹한 '할린 테멘'은 1등으로 자원입대하였다고 한다.


훈련을 마치고 5500명이 한국으로 파병됐는데 그중의 대부분이 쿠르드족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중공군하고 전투가 있었는데 쪽수가 얼마나 많은지 총을 손에서 놔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한국의 기억은 습도가 높았다는 것과 한국 사람들이 터키말을 배워서 장사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 가난한 쿠르드 병사들보다도 한국인이 더 가난했던 것.



'할릴테멘'은 2005년에 참전용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공식적인 터키군 소속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할린 테멘이 제공한 자료와 인터뷰의 일관된 주장은 당시 쿠르드족은 '강제징집'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였으며 쿠르드족이 대다수의 병력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또한 터키인에 비해 차별받고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았다는 것, 전후보상은커녕 모든 영광은 터키가 가져가고 쿠르드 참전용사들은 버려졌단 것이다.



참전용사 '야스메 이세'는 말한다.

"한국의 어디서 싸웠는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이 발전하게 된 초석에는 '쿠르드족'의 피도 배여있단 걸 기억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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