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망 이후 30년간 지속된 한 병사의 투쟁

1974년, 필리핀 '루방섬'에서 일본군 복장을 한 중년 남성 한 명이 세상에 투항한다. 그의 이름은 '오노다 히로'...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 2월, 연합군은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필리핀의 루방섬을 점령한다. 당시 정보장교였던 오노다 히로는 항복을 거부하고, 부하 3명과 함께 밀림 속에 숨어들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에도 이들의 투쟁은 계속되었으나 결국 3명 중 1명은 필리핀 정부군에 항복했고, 나머지 2명은 순찰 중이던 정부군과 교전하다 각각 1954년, 1972년에 사망한다.


부하를 모두 잃고, 혼자가 된 오노다 히로는 밀림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자신만의 투쟁을 계속 이어간다. 이후 필리핀 정부 등이 찾아와 "일본은 항복하였고, 전쟁이 끝났으니 투항하라" 설득하였으나 오노다는 이를 연합군의 계략이라 판단했고, 그의 은둔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는 자신이 파악한 미군과 필리핀군의 동향을 끝없이 무전기를 통해 보고하였으며, 매일 전투 일지를 작성했다.


※ 한편 그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일본은 1960년이 돼서야 오노다 히로를 공식 사망한 것으로 처리한다.


이런 이야기를 접한 '스즈키 노리오'라는 일본 교수는 필리핀에서 사라진 오노다 소위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껴 '루방섬'을 방문하게 되고, 그와 조우하는 데 성공한다.



교수는 일본은 항복했으며 전쟁은 끝났다고 오노다를 설득했으나 오노다는 그런 이야기는 믿을 수 없으며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신은 군인이기 때문에 직속상관의 명령 없이는 절대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에 스즈키 교수는 수소문 끝에 2차대전 당시 그의 상관이었던 '타나구치'소령을 찾아내고, 그를 대동하여 루방섬을 제차 방문한다.



타나구치 소령을 만난 오노다는 일본이 패배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마침내 투항하기로 결심한다. 오노다 히로 소위는 약 30년 동안 일본군으로서 밀림에 숨어 자신만의 고독한 전투를 벌이며 살아왔던 것이다.


투항 당시의 오노다는 수백 발의 총알과 잘 관리된 99식 소총, 수류탄까지 휴대하고 있었으며 완벽한 군인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오노다의 발견 소식은 패전국 컴플렉스와 미국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일본인들을 열광시켰고, 오노다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 속에서 귀국한다.


※ 오노다가 밀림에 숨어 지낸 30여 년 동안 30여 명의 사람을 살해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나 일본의 뜨거운 반응 앞에 별 수없이 필리핀 정부는 오노다를 사면하기로 한다.


일본인들 중에서도 특히 극우파들은 30년간 일본 제국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항복하는 순간에도 철저히 관리된 모습을 보여준 그를 진정한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러나 오노다는 현대화된 일본에 적응하지 못해 브라질로 이민을 가고, 1996년 필리핀 루방섬을 찾아 학교에 1만 달러를 기부한 후 일본에 다시 귀국한다. 그리고 우익 운동가 아내를 맞이한 뒤 「위안부의 책임은 없다, 남경 대학살은 중국의 날조이다 등의 주장을 펴며 우익 운동가로 변신했다.



일본은 항복하였으나 그는 자신 마음 깊은 곳에서 항복을 거부하고, 여전히 2차대전 일본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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