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TALK 데일리톡 2018. 10. 3. 09:36
재군비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대외 팽창을 준비하던 히틀러는 독일의 영토지만 제1차 대전 후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라인란트'에 군대를 주둔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군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재무장한 지 1년 밖에 안 된 독일이 영국, 프랑스 연합국과 일전을 벌인다면 승산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당시까지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히틀러는 만일 프랑스가 반격에 나선다면 즉각 후퇴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군부의 수장인 '전쟁성(국방부)'장관 '블룸베르크'의 동의를 얻어냈다. 블룸베르크 그리고 1936년 3월 7일, 마침내 작전이 개시되었지만 뜬 눈으로 밤을 새웠을 만큼 히틀러도 몹시 몸을 사렸다. 유사시 퇴각이 가능하도록 동원된 3만 7000여 명 중 강을 건너 라인란트로 진군한 병력은 1만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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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 TALK 데일리톡 2018. 9. 14. 09:00
1939년 9월 18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2주 밖에 되지 않았을 시점에 독일 재무성은 비밀작전을 계획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안드레스(Andres)' 작전이었다. 작전 내용은 대규모로 위조 파운드를 제조, 영국 상공에 살포하여 영국 경제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당시 'SS(나치 친위대)'의 수장이었던 '히믈러'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그런데 1942년 재무성의 작전을 좌절시킨 장본인인 SS가 도리어 그 작전을 부활시키는데... 1942년, SS 중령 '베른하르트 크루거'가 이 작전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베른하르트 작전(Operation Bernhard)'이라 명명한다. 작전의 총책임자가 된 베른하르트는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유대인 기술자들과 인쇄..
DAILY TALK 데일리톡 2018. 7. 20. 08:00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히틀러라는 희대의 독재자와 나치라는 전범 집단을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인류사에 끼친 악행이 쉽게 치유되기 힘들 만큼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독일에서조차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법적으로도 나치에 대한 모든 것이 부인되고 부정될 정도이다. 하지만 한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인물과 집단이었던 만큼 이들이 남긴 유산 중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전통이나 문명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있다. 폭스바겐 비틀 (Volkswagen Beetle) 모든 국민들이 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차량 설계자인 '페르난트 포르쉐'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하는 새로운 개념의 차, ..
MILITARY TALK 데일리톡 2018. 7. 16. 09:00
1883년, 미국의 '하이럼 맥심'이 발명한 '맥심 기관총'은 제1차 대전 당시 동맹국이건 연합국이건 상관없이 최전선의 화력 지원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맥심 기관총 그러나 이 기관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중대를 편성해야만 했는데, 그 이유는 자체 무게만 60kg 이상인데다 부속 장비로 인하여 보통 4~6인이 팀을 이뤄야 겨우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맥심 기관총은 탄띠급탄식을 채택하여 분당 최대 650발의 발사속도를 가졌다. 이는 숙련된 50명의 사수가 발사하는 소총의 화력과 맞먹는 것이었을 만큼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경이적인 수준이었다. 이에 맥심 기관총은 거점에 거치해 놓는 형태로 방어전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살상력이 워낙 크다 보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제1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