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훈련증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았던 '천리행군'

1998년 4월 1일, 특전사 흑룡부대(5공수여단)는 한달 간의 종합전술 훈련을 떠났고, 전술훈련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인 '천리행군'이 시작되었다.


천리행군은 특전사 훈련중 '특전사의 꽃' 이라 불리우는 훈련이다. 400km에 달하는 코스를 1주일동안 걷는 훈련으로 실제 전술훈련을 포함하면 그 거리는 약 500~600km에 달한다.



천리행군이 시작되자 밤낮을 가지리 않고, 감행군을 거듭한 5공수 특전대원들은 행군 5일차 만에 민주지산에 다다르게 된다. 계절은 4월 초봄이었지만 민주지산에는 눈이 쌓여있었고, 기후는 심상치 않았다.


민주지산

위치 : 충북 영동군 용화면 / 전북 무주군설천면 / 경북 김천시 부항면, 높이 : 1,242m

산의 위치가 충북 전북 경북에 걸쳐있다. 이 산은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기후로 등산가들의 정복욕구를 자극해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민주지산 정상에 다다른 특전대원들은 그 곳에서 숙영을 하게 되었는데...


밤이 되자 초속 40M의 엄청난 강풍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고, 곧이어 그 비가 폭설로 바뀌면서 30cm까지 쌓이는 적설량을 기록한다. 이런 기상이변으로 체감 온도가 '영하30도'까지 내려가는 4월의 혹한기가 시작된것이다. 


천리행군중인 특전사


엄청난 악천후로 헬기마저 뜰 수 없는 상황속에 한달간의 전술종합훈련에 이어 산악으로만 다니는 천리행군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대원들은 극한의 추위를 만나게 된다. 결국 저녁 18:20분경, 이광암 하사(23)가 숨졌고, 곧이어 김광석 대위, 오수남 하사(19), 이수봉 중사(24), 한오환 하사(22), 전해경 하사(22)가 목숨을 잃는다.



사건 발생 이후 조사에 착수한 국방부는 "16일부터 계속된 훈련으로 대원들의 피로가 누적된데다 지옥훈련과정인 천리행군도중 악천후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저체온증을 유발,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직접 사인은 탈진으로 인해 피부와 근육이 갈라지는 열상과 간기능저하였다고 밝힌다.



여기서 방한복과 야영장비, 응급의약품 등 산지야영에 대비한 충분한 대비 없이 무리하게 훈련을 강행했던 지휘관의 과실도 드러났고. 기상악화로 첫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산악훈련을 중단하지 않고 예정된 집결지로 모이도록 하는 훈련을 강행해 추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국방부는 사고의 지휘책임자인 대대장을 보직해임한 데 이어 여단장과 여단 정보참모에 대해 훈련감독 부실 책임을 물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이춘일 중령은 책임을 묻고 보직해임 된다.


민주지산 특전사 위령비


당시 지휘관이였던 대대장이 내렸던 명령은 "군장이고 총이고 다 버리고 살아남아라 무조건 살아서 집결지에서 만나자"였다.



또한 당시 대대원사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군 생활 30년만에 이런 날씨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예측하지 못했고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수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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