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차세대 전투기 후보로 떠올랐던 고물 전투기
- MILITARY TALK
- 2018. 7. 20. 09:00
지난 2006년, 캐나다는 기존에 운용하던 'CF-18' 전투기를 대체할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미국의 록하드 마틴사가 개발하던 'F-35' 전투기 88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캐나다 CF-18 전투기
F-35 전투기
그러나 사업 초기부터 F-35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속도가 느리고 작전반경도 짧은 F-35 전투기는 국토가 넓은 캐나다의 작전 환경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점은 캐나다 공군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차세대 전투기 도입 사업에 F-35 전투기 도입을 포기하고, 개발된지 반세기가 지난 'CF-105' 전투기를 부활시키자"는 여론이 들끓었다는 것이다.
CF-105 전투기는 캐나다가 1953년부터 개발을 추진했던 자국산 초음속 전투기다. 이 전투기는 당대 뛰어난 성능으로 캐나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개발비와 미국의 견제에 맞닥뜨린 캐나다는 1959년 2월 20일, 이 사업을 취소해버렸다.
사업이 취소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다시 개발하자는 논의가 나올 정도로 CF-105 전투기의 성능은 당대 최고였다.
1950년대, 캐나다가 처음으로 자국산 전투기 개발에 나선 이유는 소련의 위협 때문이었다. 소련의 전략 폭격기에 대응할 요격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1953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 당시 캐나다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영국과 미국의 각종 군용기를 면허 생산하면서 다져진 경험과 생산기술이 뒷받침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CF-105 전투기는 안과 겉 모든 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이때 개발된 캐나다의 '이쿼로이' 엔진은 당시 최고의 성능을 뽐내던 영국의 '롤스로이스' 엔진 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고, 전투기를 기계조작이 아닌 전자신호로 조종하는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도 초보적이었으나 20년 이상 시대를 앞섰다.
또 개발 및 제작사인 '아브로 캐나다(Avrro Canada)'는 출력 향상형 개량 이쿼로이 엔진을 장착한 CF-105 Mark Ⅲ 기체는 마하 3 이상의 속도는 물론 고고도 진입이 가능하다고 선전했다.
마하 3이 넘는 속도 때문에 1970년대 후반까지 서방 진영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구 소련제 미그-25 전투기와 비슷한 설계 개념을 20년 전에 구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개발 과정에서 계속된 업그레이드와 각종 첨단 장비 채택으로 예산이 불어났다. 처음에는 대당 200만 달러로 책정한 가격이 1,200만 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결국 1957년 새로 집권한 정권은 국방위에 사업 자체를 취소하라는 압력을 가했고, 이에 캐나다 국방위원회가 사업 취소를 막으며 시간을 버는 동안 '아브로 캐나다'사는 생산 단가 하락과 판로 확보를 위해 외국과 공동 개발을 모색하고 나섰다.
이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미국과 프랑스, 영국이었다.
미국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을 빼고 오히려 견제구를 날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캐나다의 '디펀베이커' 총리가 캐나다 영공 방위에 자국의 CF-105 전투기 대신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미국제 CIM-10 보마르크(Bomarc) 대공미사일을 대량 도입하기로 미국과 이미 합의가 돼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CIM-10 보마르크 대공 미사일
프랑스는 이쿼로이 엔진에 관심을 가졌고, 영국은 온전한 기체 144대를 구매할 수 있다며 캐나다의 연구 의욕을 북돋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1959년 1월, 영국은 공동 연구는 지속하기를 원하지만 기체를 구매할 수 없다는 최종 답신을 보내왔다. 기술에만 관심 있을 뿐 완제기는 살 수 없다는 얘기였다. 결국 영국의 주문이 무산된 지 1개월 만에 캐나다 국방위원회도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들었다.
디펀베이커 총리가 미국의 압력과 농간에 굴복해 항공산업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각계의 항의에도 캐나다 정부는 사업 취소를 전격 발표했고, 사업 취소 발표일인 1959년 2월 20일은 캐나다 항공 산업사에서 '검은 금요일(Black Friday)'로 남았다.
캐나다 정부는 사업을 취소하며 완제품 시제기 'CF-105 Mark Ⅰ' 다섯 대와 98%가량 제작된 'CF-105 Mark Ⅱ'는 물론 설비와 치공구를 완전히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대 최고의 전투기와 제작 기술, 제조 공정의 유출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살 길이 막막해진 아브로 캐나다사는 직원 1만 4,528명을 해고했고, 연관기업 종사자 1만 5,000명도 직업을 잃었다. 핵심 기술자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빠져나갔다.
캐나다는 아직도 중형 항공기 부문에서 손꼽히는 강자이지만 전투기 독자 개발의 기반은 완전히 무너졌다.
CF-105 프로젝트 취소 4개월 뒤 디펀베이커 총리는 미국제 'F-101' 전투기 도입 계약을 맺었다.
F-101
CF-105보다 성능이 훨씬 떨어져 후보 기종에서 배제됐던 전투기를 다시 올린 것이다. 이때 디펀베이커 총리는 미국제 전투기 도입이 싸다고 강조했으나 나중에 도입 물량이 두 배로 늘어 CF-105 개발만큼이나 부담이 커졌다. 보마르크 미사일 도입 비용까지 합치면 지출 규모는 더욱 컸다.
결국 디펀베이커 총리는 CF-105 사업 취소를 둘러싼 논란을 시작으로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처럼 극적인 요소가 많아서인지 CF-105 전투기가 전설에서 뛰쳐나와 5세대 전투기로 환생할 것이라는 기대는 실행되기 어려웠고, 결국 캐나다 정부는 공군 차기 전투기 후보였던 미국 록히드 마틴 사의 F-35기 구매 사업 백지화 이후 현행 CF-18기를 잠정적으로 대체할 기종으로 미국 보잉사의 F/A-18 슈퍼호넷기 18기를 우선 구매키로 했다.
F/A-18 슈퍼호넷
슈퍼 호넷은 F-35기 성능에는 못 미치지만, 미 공군에서 현역 기종으로 운용되는 만큼 실전 능력이 검증된 기종이고, 북미 공동 작전에 즉각 통합 운용될 수 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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