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만리장성보다 긴 토끼 울타리가 생겨난 사연

토끼는 엄청난 번식력 때문에 생명과 풍요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토끼는 한 배에 4~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이 새끼들은 금방 자라 6~7개월 후면 임신할 수 있는데, 임신 기간 30일이 지나면 다음 세대가 태어난다.



이처럼 번식 속도가 빨라 이론상 한 쌍의 토끼가 1년에 최대 800마리의 집단으로 자랄 수 있다. 그러므로 고기나 가죽을 얻는 용도로 토끼는 아주 좋은 가축이다. 그런데 토끼의 어마 무시한 번식력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호주이다.


만리장성보다 긴 호주의 토끼 울타리


호주에 토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세기 초, 호주 남동쪽의 '태즈메이니아'섬이다. 이곳의 주민들이 기르던 토끼가 사육장을 벗어나 야생에서 번식하기 시작했다. 수천 마리씩 떼지어 다니는 토끼들이 풀을 먹어치웠고, 나무껍질을 갉아먹는 통에 수많은 나무가 죽어 나갔다.



그렇지만 이 섬의 생태계가 파괴되거나 논밭이 망가질 정도로 피해가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이 섬에는 토끼를 잡아먹는 포식동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호주 본토로 넘어간 토끼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859년에 '토머스 오스틴'이라는 농장주가 12마리의 회색 토끼를 호주로 들여온 것이 그 시초다. 그는 영국에서 이주해왔는데, 떠나온 고향에서 주말마다 즐겼던 토끼 사냥을 이곳에서도 계속하고 싶었다. 결국 그는 영국에 있는 조카에게 토끼를 보내 달라 부탁했고, 조카는 12마리의 유럽 토끼를 호주로 보냈다.



그의 농장이 있는 '빅토리아' 주는 겨울 날씨가 비교적 온화하기 때문에 토끼들은 1년 내내 번식할 수 있었다. 외래종이라는 이유로 천적이 없는 호주 땅에서 토끼는 3년 만에 수천 마리로, 10년 후에는 수천만 마리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양 목장이 큰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여러 토착종이 멸종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생태 환경 전체가 파괴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정부가 나서 매년 200만 마리씩 사냥을 해도 토끼 수는 계속 불어났고, 20세기에 들어서는 급기야 5억~6억 마리에 달했다.



호주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토끼 수를 통제해야 했다. 토끼 굴을 갈아엎기도 하고 불도저나 트랙터를 동원해 깔아뭉개기도 했다.



폭약으로 날려버리기, 토끼굴에 연기 집어넣기, 덫이나 독약 풀어놓기, 여우나 흰담비 같은 천적 풀어놓기 등 가능한 모든 일을 했지만 토끼의 가공할 번식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1907년에는 토끼가 호주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긴 길이의 펜스를 설치했지만, 이는 토끼의 점프 능력과 땅파기 능력을 모르고 한 일이었다.



이후 토끼들은 물과 풀을 찾아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갔다.


그런데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 시기 토끼는 호주의 영웅으로 탈바꿈 하게된다. 대공황으로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호주 국민들이 지천에 널린 토끼를 잡아먹었던 것이다. 대공황으로 세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호주는 토끼 고기로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며 대공황 죽음의 공포를 빗겨나갔다.



십수 년 후 토끼는 또 한 번 호주를 구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호주는 부족한 군량을 토끼 통조림으로 채웠던 것이다. 하지만 대공황,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토끼는 다시 골칫거리가 됐다.



이로써 1950년에는 토끼에게 치명적인 '다발성 점액종' 병균을 퍼뜨리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브라질 토끼가 보유한 이 병균은 유럽산 토끼에게는 치사율이 99.8%나 될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이때 80%의 토끼가 죽어서 개체 수는 1억 마리로 감소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천성적으로 이 병에 내성을 가진 토끼 수가 불어나 점차 치사율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91년에는 다시 2억 마리 이상으로 불어났고, 오늘날에도 호주에선 토끼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급기야 취업 사이트 '잡코리아'에는 '호주 토끼 잡기'라는 제목의 아르바이트 구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호주의 인구보다 몇십 배나 많은 토끼를 줄이기 위해 외국에서 '알바'를 고용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도 호주 토끼는 수 억 마리에 이르고 있으며, 호주 정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토끼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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