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드 첩보로 완성된 이스라엘의 자국산 전투기 I
- MILITARY TALK
- 2018. 8. 15. 07:00
프랑스의 방산 업체인 '다쏘'는 지난 2000년대 초, 우리 공군의 차기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미국 보잉의 'F-15K'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아깝게 탈락한 '라팔' 전투기의 제작사다.
프랑스 다쏘사의 Rafale
그러나 다쏘의 명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세계적인 군수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만든 대표작은 라팔이 아니라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 '미라주' 전투기다.
우리 공군은 창군 초기부터 미국의 지원을 받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예외 없이 미국제 전투기를 사용해 왔다. 그래서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미라주 시리즈가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전투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라주 시리즈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베스트셀러가 된 결정적 계기는 제작국 프랑스보다 주요 사용국이던 이스라엘의 활약이 컸다. 특히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아랍 제국 사이 벌어졌던 6일 전쟁에서 '미라주 III'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한 이스라엘 공군의 활약은 전쟁 전체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견인했다.
이스라엘의 미라주 III 전투기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아랍의 공군력은 개전 첫날 이스라엘 공군의 기습으로 전멸하다시피 했고, 이스라엘 지상군은 하늘로부터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고 신속히 적진으로 진격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이스라엘의 정밀한 기습이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앞장서서 작전을 수행한 '미라주 III' 전투기가 보여준 역할은 가히 돋보일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미라주 III'의 활약에 힘입어 6일 전쟁의 승자는 이스라엘로 끝이 났다.
그러나 6일 전쟁은 이스라엘의 선공으로 시작된 전쟁이었고,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을 강제 점령하자 국제 사회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8년 12월 26일에는 아테네 공항에 기착해 있던 이스라엘 민항기가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의 공격을 받아 기체가 파손되고 승객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레바논 공항에 침투해 12기의 아랍 여객기를 격파했다.
국제 사회로부터 너무 지나친 보복이라는 반발을 샀고, 결정적으로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한 사건이었다. 동시에 이스라엘에게 첨단 무기를 제공한 프랑스에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결국 프랑스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하여 1969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 지금은 미국이 이스라엘의 후견인 노릇을 하지만 당시까지 이스라엘에게 유일하게 전투기 같은 고급 무기를 공급하여 주었던 나라는 프랑스였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이미 주문해 놓았던 차세대 전투기인 '미라주 5J'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라주 5는 개발 단계부터 철저하게 이스라엘의 요구에 따라, 이스라엘을 위하여 설계되고 제작된 기종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기종이었다.
한편 금수조치 내용을 사전에 통보받은 이스라엘은 즉시, '람(천둥)' 계획에 착수했는데, 핵심은 미라주 5 전투기를 복제하는 것이었다.
미라주 5는 오직 이스라엘을 위해 제작된 전투기다 보니 최초 도입 계약을 맺었을 때 절충교역 방식으로 일부 부품을 이스라엘에서 생산하기로 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일부 생산 설비와 도면은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고성능 전투기를 뚝딱하고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 핵심 장비들이 문제였는데 그중에서도 전투기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의 확보가 난제 중의 난제였다. 이에 상황이 다급했던 이스라엘은 자체 개발에 나설 시간이 없다 보니 엔진도 복제하기로 결심했다.
미라주 5에 장착된 Atar 09C3 엔진
이스라엘은 도면만 확보되면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엔진을 복제할 것이라 판단했고, 그 이름도 유명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도면을 확보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1968년 4월, 당시 미라주 5 엔진은 스위스의 '슐처'사가 면허 생산하고 있었고, 이에 모사드는 유태인에 호의적이었던 인물이었던 슐처의 엔지니어 '프라우엔네크'를 포섭하여 무려 20만장에 이르는 도면을 빼내는데 성공한다.
25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은 '프라우엔네크'는 24상자에 담긴 20여 만 장의 도면을 모사드 요원에게 넘겼는데 마지막 4상자를 전달하기 직전 경찰에게 체포된다.
이렇게 확보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1년도 되지 않아 엔진을 복제하는데 성공한 이스라엘은 프랑스 정부의 금수조치가 내려진 직후인 1969년에 무단 복제한 엔진을 장착한 미라주 5J 카피 전투기를 날리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탄생한 이스라엘제 카피본 미라주가 바로 '네셔'다.
이후 네셔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이스라엘은 무기 개조의 천재들답게 미국의 F-4 팬텀에 쓰인 강력한 J-79 엔진을 네셔에 장착하는 실험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 결과 속도와 기동력 그리고 작전반경이 향상된 슈퍼 미라주인 '크피르' 제작에 성공했다.
크피르 전투기
한마디로 미라주가 이스라엘로 건너와 원판을 능가하는 최강의 미라주로 발전하였던 것이었고, 제5차 중동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그 성능을 만천하에 입증시켰다.
하지만 이처럼 첩보전의 신화로 알려진 이스라엘제 전투기의 탄생 비화에는 사실 프랑스와 이스라엘의 드러나지 않은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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