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던 구형 항모가 인도인들의 국보로 기억되는 이유
- MILITARY TALK
- 2018. 8. 20. 09:00
인도 최초의 항공모함 '비크란트'는 지난 1997년 인도 해군에서 퇴역한 이후 해상 박물관으로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나 예산 부족에 시달리던 인도 해군이 운영 경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2013년 12월에 박물관을 폐장하여 뭄바이에 있는 한 폐선 업체에 '6억 3,000만 루피(약 111억 원)'에 이 배를 매각했다.
이 업체는 배를 해체하여 고철로 판매하려 했지만, 비크란트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인도 시민단체들과 예비역 군인들은 인도 최초의 항공모함이자 인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항공모함은 국보로 보존되어야 한다며 업체를 상대로 해체 작업 중지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업체의 승리였고, 비크란트는 해체가 결정됐다.
이처럼 군함 하나 해체되는데 국민적 논란이 가열되며 법적 공방이 가열된 데에는 이 배가 여러 사연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 해군의 첫 번째 항공모함으로 지난 1961년 취역한 비크란트는 원래 인도 군함으로 태어난 배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이 개발하여 독일 잠수함을 상대로 싸울 예정이었지만, 건조가 완료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버렸고, 이 배를 주문한 영국정부는 배를 인수할 여력이 없었다.
이후 10년 넘게 방치되어 있던 이 항모에 관심을 보인 것은 인도였다. 인도는 1957년에 이 배를 구입한 뒤 전투기를 탑재하기 위해 무려 4년에 걸쳐 대대적인 개조 공사를 실시했다. 20,000톤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덩치지만, 인도 해군은 이 항공모함에서 영국제 '호커 씨-호크' 전투기를 운용했다.
'씨호크 전투기'는 1950년대 초에 영국 해군에 취역했다가 몇 년 못 가 퇴출당한 초창기 제트 전투기였다. 속도는 느렸고, 기관포와 폭탄, 로켓탄 정도만 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육상에서 발진하는 제대로 된 제트 전투기와는 상대할 수 없는 빈약한 전투기였고, 인도 해군도 '항공모함을 가졌다'라는 시현효과 말고는 이 전투기와 비크란트 항공모함에 크게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1965년 발생한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볼품없던 항모가 인도인들의 국보로 탈바꿈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인도는 전쟁 발발 직전 비크란트 함대를 출항시켜 동부 파키스탄 해안 지역 폭격 임무를 부여했다. 목표는 파키스탄에서 분리독립해 현재는 방글라데시 영토가 된 '콕스 바자르' 항구와 벵골만 인근의 '치타공' 항구였다.
당시 인도 해군은 비크란트 항모전단을 실전에 투입하면서도 파키스탄 공군의 역습을 대단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시 파키스탄 공군은 미제 F-86 전투기는 물론 초음속 전투기인 F-104를 보유하고 있어 이들 전투기와 공중전이 붙을 경우 아음속 전투기인 씨호크가 이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 해군의 이러한 우려는 기우라는 것이 곧 드러났다. 애초에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서부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벌어진 분쟁이었고, 파키스탄의 공군력은 서부 지역에 집중되어 인도 공군의 미라지 전투기와 싸우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군부 누구도 멀리 떨어진 동부지역에 인도 항모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하지 못했다. 비크란트는 의도치 않게 파키스탄의 허를 찌르며 구식 전투기로 동부 전선의 제공권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활약을 펼쳤다.
비크란트는 동부 지역의 파키스탄군 핵심 해군기지와 비행장을 폭격해 철저히 파괴시키고 유유히 항모로 돌아왔고, 오는 길에 파키스탄 잠수함까지 1척 격침시키며 단숨에 인도 국민들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비크란트에 의한 동부 파키스탄 전선에서의 대승은 이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결국 동파키스탄은 1971년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구식 항모와 구식 전투기가 방글라데시 독립의 신호탄을 쏜 것이었다.
볼품없던 구형 항모가 1965년, 단 한번의 눈부신 활약으로 인도인들의 보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배에도 수명이 있는 법. 더 이상 항해가 어려울 정도로 낡은 비크란트는 1997년 인도 해군에서 공식 퇴역했다. 그러나 이 배를 기억하는 인도 국민들은 비크란트가 다른 군함들처럼 해체되어 사라지는 것을 거부했고, 인도해군은 뭄바이 항구에 '비크란트 해상 박물관'을 개장했다.
하지만 인도 국민들이 아무리 이 배를 애지중지한다 하더라도 결국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박물관 입장 수입만으로는 이 배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인도 해군은 결국 이 배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인도의 최대 숙적 파키스탄을 일방적으로 대파한 '비크란트'의 활약은 인도 시민들의 영원한 국보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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