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고립 속에 대만이 개발한 자국산 전투기

한때는 UN 창설 멤버였던 대만은 1971년 10월, 중국의 UN 공식 가입과 함께 중국에 그 자리를 내주며 UN에서 탈퇴 당한다.



UN에서 축출된 대만은 외교적으로 고립이 급속히 가속화되었지만 그래도 미국이라는 끈을 놓지 않았다.



미국 또한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만과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는데, 문제는 경제·문화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이 민감해할 군사적인 분야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1982년 8월 17일, 미국과 중국은 이른바 '817성명'으로 알려진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합의문 내용 중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1항은 이미 국교 수립 당시에 합의한 것이므로 굳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핵심은 6항~8항에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국의 의사에 반하여 미국이 대만에 무기를 함부로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명은 이제 대만에 자유롭게 무기를 공급할 나라가 지구상에 없어졌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국력과 경제 수준을 고려할 때 모든 무기를 자급자족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대만에 이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노후 기종을 신속히 교체해야 할 전투기 분야는 그야말로 앞날이 불투명했다.


당시 대만의 주력 전투기였던 F-5 전투기


예전이면 냉전의 울타리 덕분에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어느덧 돈이 있어도 원하는 무기를 살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전투기는 아무리 성능 개량을 하여도 수명 연장에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무기다. 특히 성능이 시대에 뒤처진 전투기는 비행 가능 여부와 관련 없이 임무에서 탈락하게 된다. 결국 시간이 부족하였고, 선택의 여지가 없던 대만은 1982년 국산 전투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 막중한 프로젝트는 대만 국영 기업인 'AIDC'가 주도하였다. 1969년 설립된 AIDC는 미국의 'F-5E/F' 전투기를 라이선스 생산하여 군에 공급하였기 때문에 전투기 개발에 관한 기본적인 기술력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고성능 전투기의 개발을 위해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F-5E/F


이때 다수의 미국 업체들이 개발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제너럴 다이내믹스(GD)'는 F-16을 제작한 회사이기도 하다.


결국 대만은 불과 3년 만인 1985년에 영공 방어용 자국산 'F-CK-1 징궈' 전투기를 탄생시켰는데, 개발 기간이 상당히 짧았던 이유는 미국의 다수 업체들이 참여하면서 기존에 검증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이다.


'F-CK-1 징궈' 형식상 민간 기업들의 참여로 개발이 이루어졌지만 미국 정부의 간섭으로 그 성능은 F-16에 한참 못미친다.



1988년, 당시 '장징궈' 총통의 이름을 따서 '징궈(經國)'라고 명명되었을 만큼 신예 전투기에 대한 대만의 열망은 컸다. 마침내 1989년 5월 28일, 초도 비행에 성공했고, 이후 수많은 실험을 거쳐 1994년부터 감격적인 도입이 개시되었다.


'F-CK-1 징궈' F-16을 그대로 이식받았다고 해도 별다른 이의가 없을 정도로 징궈와 F-16의 외형은 유사한 점이 많다.


원래 대만 공군은 당장 도태가 시급한 F-104 대체 분을 시작으로 총 256기를 획득할 예정이었지만 양산이 개시되기 직전인 1991년, 불가피하게 애초 계획의 절반 정도인 130기로 축소되었다.


F-104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치명적인 결함이나 경제 문제로 국방비가 대폭 축소되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프랑스가 '미라주 2000'을 판매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러자 아무리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엄연히 자신들의 무기 시장인 대만을 그대로 빼앗길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도 F-16의 공급을 약속하고 나섰다.


미라주 2000


F-16


당연히 중국의 반발이 있었지만 1989년 벌어진 천안문 사태로 중국은 서방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으며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던 중이었다.


아무래도 징궈가 미라주 2000이나 F-16보다 성능이 뒤진 것은 사실이었기에 이러한 기회가 왔을 때 대만도 정책을 바꿔야 했다.


도입 계약을 맺은 60기의 미라주 2000과 150기의 F-16은 '징궈'의 양산을 중단할 수도 있는 물량이지만 대만 당국은 지금까지의 투자와 확보된 기술력 유지 그리고 이후의 국제 정세 변화 문제 등을 고려하여 징궈의 도입량을 줄이는 대안을 택하였던 것이다.



물론 야심 차게 개발한 징궈의 위치가 어정쩡하게 되었지만 대만의 입장에서 고성능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것도 충분히 타당한 전략이었다. 


어쩌면 그토록 원했지만 정작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대며 회피하였던 강대국들이 징궈가 등장하자 태도를 돌변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군사 전략을 짤 때 너무나 제한이 많은 대만에 징궈가 차지하는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징궈는 순전히 대만의, 대만에 의한, 대만을 위한 전투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나 평가와 상관없이 대만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능력과 의지를 실현한 전투기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으며 또한 일선의 조종사들도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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