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를 맞이한 아르헨티나의 특이한 전투기 구입법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아르헨티나는 유럽에서 '아르헨티나 드림'을 꿈꾸며 이주할 정도로 부유하고, 살기 좋은 나라였다.


1920년대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줄곧 내리막길을 걷긴 했지만, 넓은 영토와 탄탄한 1차 산업이 유지되고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군사력은 '썩어도 준치'였다. 1980년 포클랜드 전쟁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포클랜드 전쟁 이전의 아르헨티나는 최신 전투함과 전투기를 다수 보유한 남미의 군사강국이었다.


아르헨티나가 보유했던 구축함 'Hipolito Bouchard'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에서 무려 100여 대의 항공기와 8척의 군함을 상실하면서 군사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전쟁 이후 패전에 의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30년 가까이 제대로 된 무기 도입을 하지 못해 현재는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노후 장비만 보유한 나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는 주변에 안보를 위협할만한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노후 전투기나 군함만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다.


제작된지 50년이 지난 아르헨티나 공군 'A-4AR FIGHTINGHAWK' 전투기


하지만 이제는 전투기와 군함이 너무 낡아 부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포클랜드에 영국이 지난 2008년부터 전투기와 구축함을 증강 배치하면서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 도입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형 전투기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가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은 이스라엘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스라엘의 '크피르' 전투기 18대 도입을 추진했지만 협상 타결 직전 영국의 압력으로 협상이 흐지부지되면서 전투기 도입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크피르 전투기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스웨덴과 접촉해 최신형 전투기인 '그리펜 NG' 전투기 도입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전투기는 전체 부품의 약 28%가 영국에서 생산되고 있었고, 당연히 영국은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아 그리펜 전투기 도입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스웨덴 JAS-39E 그리펜 NG 전투기


결국 영국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피하기 위해 아르헨티나가 눈을 돌린 곳은 러시아였다.



또한번 아르헨티나는 러시아에 중고 전투기와 군함을 임대 또는 판매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번에는 러시아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변수는 '결제방식'이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2014년, 디폴트를 선언했고, 외화보유고는 바닥을 치고 있었으며, 대외 부채가 1320억 달러가 넘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무기 대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돈은 없어도 무기 도입은 절실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가 러시아에 제시한 결제 방식은 '물물교환'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콩과 밀, 쇠고기 등 농축산물은 풍부한 나라이고, 세계적인 농축산물 수출국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자신들에게 풍부한 밀과 쇠고기로 전투기 임대료를 내겠다고 러시아에 제안했다.



러시아는 세계 3위의 밀 수출국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로부터 밀을 수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나, 쇠고기는 이야기가 달랐다. 러시아는 과일과 채소류, 육류 등을 매년 400억 달러 이상 수입하는 세계 5위의 농축수산물 수입대국이었다.


여기에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과 캐나다, EU, 호주 등 주요 농축수산물 수출국들이 대러시아 경제제재 조치를 발표하자 이에 격노한 푸틴 대통령이 이들 국가로부터의 농축수산물 수입을 1년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버리면서 러시아 국내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해 버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축수산물의 수입선 다변화를 모색하던 중 돈은 없지만 농축수산물은 풍부해 현물로 대금을 지급하고 무기를 도입하려는 아르헨티나가 물물거래를 제안해 온 것이었다.


결국 러시아는 아르헨티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로써 러시아는 도태 장비인 'Su-24'를 아르헨티나에 빌려 줌으로써 노후 항공기 운용에 필요한 유지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대 대금으로 농축산물을 들여와 국내 식료품 가격 안정도 도모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SU-24 전투기



아르헨티나 역시 강력한 정밀유도무기 운용이 가능한 Su-24 도입을 통해 공군력 강화를 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축되고 있던 국내 축산업계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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