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개발한 이스라엘 최초의 자국산 전투기

프랑스의 '다쏘'를 세계적인 군용기 제작업체로 이끈 일등 공신은 '미라주 III' 전투기다.



미라주 III가 명성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7년 6월, 중동에서 벌어진 '6일 전쟁'이었는데, 이때 미라주 III 전투기를 운용하던 이스라엘 공군이 놀라운 전과를 거둬드린 것이다.



지금은 미국이 후견인 노릇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에 최신식 전투기를 공급한 유일한 나라가 프랑스였다. 덕분에 이스라엘이 전과를 올릴수록 프랑스제 전투기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다. 이에 프랑스는 최고 우량 고객이자 최대 광고판인 이스라엘을 위해 사막 기후에 적합한 '미라주 5'라는 걸작 전투기를 탄생시켰고, 이스라엘은 75기의 미라주 5를 구매하기로 했다.


항속거리와 무장 탑재능력을 향상시킨 미라주 5


그러나 초도 물량을 인도하기 직전 문제가 발생했다. 1968년 12월 26일, 아테네 공항에 기착해 있던 이스라엘 민항기가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의 공격을 받아 기체가 파손되고 승객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레바논 공항에 침투해 12기의 아랍 여객기를 격파했지만 국제 사회로부터 너무 지나친 보복이라는 반발을 샀고, 이스라엘에 첨단 무기를 제공한 프랑스에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다.



프랑스는 인도 직전이던 미라주 5에 대해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고, 이는 노후기를 대체하고 '미라주 III'의 손실분을 보충하려던 이스라엘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전투기 자력 개발로 정책을 선회했고, 비밀리에 전투기의 심장인 미라주 III 엔진의 도면을 확보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불과 3년 만에 자국산 전투기 개발에 성공한다.


1971년, 초도 비행에 성공했고, 이듬해부터 일사천리로 배치된 이스라엘판 미라주 5인 '네셔'가 그것이다.


미라주 5의 짝퉁으로 의심받을 만큼 기체와 엔진은 영락없는 미라주 5였다.


이렇게 탄생한 네셔는 총 61기가 제작되어 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 '욤키푸르 전쟁'에서 15기가 피격되는 동안 102기의 적기를 격추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이후 이스라엘은 자국군이 사용하던 39기의 네셔를 개조하여 '대거'라는 이름으로 아르헨티나에 수출했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미라주 III를 사용 중이던 프랑스의 또 다른 주요 거래처였다. 그런 시장에 미라주 5의 짝퉁으로 의심받는 대거가 수출되었다는 것은 외교적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이었지만 정작 프랑스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스라엘과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는 미라주 전투기가 비공식적인 면허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무단으로 복제해도 불과 3년 만에 고성능 전투기를 개발 완료하고 실전 배치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이스라엘판 미라지 5의 실질적인 제작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국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무기 금수 조치를 했을 만큼 책임을 다했지만 민간 기업의 경영 행위까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변명했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 미국이 이스라엘에 A-4 공격기와 F-4 전투기를 공급했다.



즉 프랑스의 금수 조치가 있었어도 이스라엘이 서둘러 국산 전투기 개발에 나서야 될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그때까지 이스라엘의 전투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프랑스에게는 상당한 위기였다.


따라서 프랑스가 겉으로는 금수 조치를 취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이스라엘이 실리를 챙길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최초의 자국산 전투기인 네셔를 개발해 낸 이스라엘은 이후 더욱 성능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이스라엘은 F-4 전투기의 심장인 강력한 J79 엔진을 네셔에 장착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신예기가 바로 '크피르 C2'였고, 1977년부터 일선에 배치되었다.


크피르 C2


그리고 1979년 벌어진 국지전에서 시리아의 'MiG-21'을 격추시켜 공대공 교전 능력을 입증하였다. 미라주 2000의 등장 이전까지 존재한 미라주 전투기 중에서 최강이 엉뚱하게도 이스라엘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크피르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 양산 당시에 도입된 최신예 F-15, F-16에 밀려 제공 임무를 내주고 대지 공격에 투입되었다. 전작인 네셔와 달리 대외 판매에도 애를 먹었는데 J79 엔진을 공급한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크로피 전투기는 태어난 지 19년 만인 1996년에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퇴역하였고, 현재는 굳이 최고급 전투기가 필요하지 않은 에콰도르, 콜롬비아, 스리랑카에서 37기가 주력기로 운용 중이다.



그리고 지난 2015년 11월, '대거'로 재미를 보았던 아르헨티나가 이스라엘이 보관 중인 중고기에 AESA 레이더를 비롯한 최신 항전장비를 장착하여 성능을 개량한 14기의 크피르 블록60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국제 무기시장에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크피르는 혼란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개발 과정 중에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서 자력으로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한마디로 탄생부터 뒷말이 많은 애매모호한 전투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국산 전투기 개발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탄생하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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