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해군력과 맞먹었던 조선 해군의 막강한 전력
- MILITARY TALK
- 2018. 7. 31. 09:00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잃기 전까지 얼마나 거대한 규모의 수군을 건설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 수군의 본영이었던 한산도에는 정박 중인 '판옥대선'이 무려 134척에 달했고, 여기에 48척이 추가 건조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 수군에는 180여 척 이상의 판옥대선이 있었다.
판옥선
당시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이었던 판옥대선은 세계 최강의 연안전투함이었다.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었던 판옥대선은 일반적인 배의 형태인 '첨저선'보다는 속도 성능은 떨어졌지만, 급격한 방향 전환 등 기동성은 더 우수했고, 내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 일본 수군의 주력함이었던 '안택선'이 화포의 반동을 견딜만한 선체 내구력을 갖지 못해 1~3문 이상의 대포를 싣지 못했던 것과 달리 판옥대선은 24문 이상의 각종 화포를 탑재해 압도적인 화력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탑재되었던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은 대형 화포로써 오늘날 대함 미사일을 연상케 하는 '대장군전'을 발사할 수 있었다. 특히 대장군전은 강력한 관통력을 가지고 있어 적함에 큰 구멍을 내 침몰시키는데 대단히 위력적인 무기였다.
특히 판옥대선에는 사거리 2km에 달하는 장거리 화포 '현자총통'과 로켓무기인 '신기전', 폭발형 포탄인 '진천뢰' 등의 무기를 탑재했는데, 이들의 사거리는 짧게는 500m에서 길게는 2km 이상의 사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 수군은 방향 전환과 선회 등 기동력이 우수한 판옥대선에 긴 사거리와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화포를 탑재하여 화력을 퍼붓는 전술을 구사했다.
이것은 적함에 도선하여 백병전으로 배를 탈취하는 형태의 해전이 일반적이었던 당시의 해전 양상에서 적어도 한 세기 이상 앞서간 전투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수군은 도선하거나 조총 사거리인 50m 이내의 거리까지 접근하기 전까지는 조선 수군에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
여기에 전장 환경을 너무도 완벽하게 이해하며 이를 이용해 전투를 지휘하는 이순신 장군에게 일본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당시 조선 수군이 동양 최강이었다면, 서양에는 스페인 무적함대을 격파하며 일약 세계 최강으로 떠오른 영국 해군이 있었다.
당시 영국 해군은 300m ~ 2km 가량의 사거리를 가진 다양한 화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화포들은 폭발력이 없는 8kg짜리 덩어리 포탄을 썼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적함을 격침시키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영국 해군은 포격을 통해 적의 조타기나 돛대를 파괴해 꼼짝 못하게 만든 뒤 총과 칼로 무장한 병력이 적선에 도선하여 함상 전투를 통해 배를 빼앗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드레이크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함대가 맞붙는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드레이크 제독
결과는 전장 상황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전투가 넓고 깊은 대양에서 벌어진다면 속도 성능이 우수한 영국 함대가 치고 빠지기 전술을 사용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수심이 얕은 연안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영국 함대가 가진 기동력 우위가 사라지기 때문에 영국 함대는 압도적인 화력 우위를 가진 조선 함대에 대패할 가능성이 크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의 화포는 화약을 제조할 때 다른 나라들과 달리 버드나무의 재를 사용해 그 성능이 맹렬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현대적인 용어로 바꿔 말하면 포구 초속이 빨랐다는 것이고, 포구 초속이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명중률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유럽 등 화약무기를 운용하던 다른 나라들은 장전수가 눈짐작으로 화약을 채워 넣고 사격했는데, 조선은 사거리에 따라 통일된 규격의 화약량을 정해 종이에 미리 싸 놓았고, 이를 통해 당시로서는 대단히 정밀한 포격을 가할 수 있었다.
특히 정밀한 사격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진천뢰'와 같은 폭발식 포탄으로 수 백발의 쇠구슬을 사격해 인마 살상에 썼기 때문에 동일한 구경의 화포라 하더라도 위력에서 영국 함대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진천뢰
즉, 조선 함대는 영국 함대에 비해 전선의 속도와 내파성을 제외하면 화력과 운동성에서 앞섰고, 제한적인 포격전과 도선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당시 해전보다 한 세기 이상 앞선 원거리 포격 전술을 구사하는 선진 해군이었다. 때문에 연안에서 맞붙는다면 영국 함대를 크게 격파할 수도 있었다.
같은 시기 영국은 비슷한 전력의 해군으로 대영제국을 건설했지만, 조선은 그렇게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도 스스로 문을 걸어 잠금으로써 망국의 길을 걸어갔다. 역사에는 가정이라는 것이 없지만 만약 400년 전 조선이 바다 밖으로 눈을 돌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역사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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