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국에 둘러싸인 스위스는 어떻게 중립국이 됐을까?

스위스군의 총병력은 12만 명에 즉시 동원 가능 예비군도 약 10만 명에 달한다. 인구 800만, 우리나라의 반 정도 되는 작은 국토에 그것도 주변에 위협을 줄 만한 잠재 적국도 많지 않은 '영세중립국가'가 이렇게 많은 군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 규모도 1990년대 말까지 유지되던 현역 30만, 예비군 30만에 비하면 많이 축소된 숫자다.



이웃 국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같은 강대국이 약 30만 내외의 군대를 보유하고, 항상 준 전시상태인 이스라엘이 15만 정도의 현역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결코 밀리지 않는 전력이다.


'영세중립국'은 다자 간의 국제 조약에 의해서 외교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외부의 침략이 있을 때 반드시 남들이 와서 도와준다고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중립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이 있어야 평화가 지켜지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나 스위스 주변에 적대 세력이 없어 보이는 것뿐이지, 역사적으로 스위스는 주변 강대국들로부터의 침탈을 피하기 힘든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다.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엄격한 무장을 통하여 중립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스위스인들이 노력을 게을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르가르텐 전투 (1315년)

외세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독립을 선언한 4개의 '칸톤(자치구)'으로 구성된 스위스 동맹군이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1세의 대군을 모르가르텐 인근의 애게리 호수에 수장시킨 전투로 스위스 최초의 승리였다.


스위스는 26개의 칸톤이 모인 연방 정부이다,.


셈파흐 전투 (1386년)

4개 칸톤이 자치권을 획득하자 이에 고무된 주변지역이 연방에 합세하려 했고, 이를 막으려는 오스트리아와 충돌이 벌어졌다. 연방의 대승으로 전투는 종결되었고, 그 결과 대략적인 오늘날 스위스 모습이 이뤄지게 된다.


낭시 전투 (1477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스위스의 독립을 방해하던 전통적 외세였다. 당시 프랑스의 '보로고뉴 왕국'이 스위스와의 합병을 노리고, 침략을 개시하여 2년간 전쟁이 벌어졌는데 스위스는 낭시에서 침략군을 전멸시켜 버렸다.



30년 전쟁 (17세기)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신구 교간에 벌어진 세계대전이었는데, 당시 스위스도 신교와 구교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이런 거대한 전쟁에 휩쓸리지 않고자 대외 중립을 표명하고, 군대를 국경으로 보내어 철통 경비를 하여 세계 전쟁에 휩쓸리는것을 차단했다. 이때부터 무장중립의 전통을 세우게 된다.


뒤프르 장군의 통일전쟁 (1847년)

'앙리 뒤프르'는 나폴레옹시대의 몰락 후 스위스의 통일을 이룩한 군사 영도자이다. 그는 전투 중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외세인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세력을 무력으로 축출하여 분열된 스위스를 통일하고, 독립을 수호한 스위스의 이순신 장군이다.


※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기욤 앙리 뒤프르 동상


보불전쟁 (1870년)

스위스는 무력의 대부분을 프랑스-독일-스위스 국경에 집중 배치하여 외세의 침탈에 대비했다. 실제로 파리가 독일에 포위되자 프랑스는 스위스를 통과하여 독일의 배후를 치고자 하였으나 자국의 영토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피하려는 스위스의 강력한 반대에 눌려 실패했고, 그 결과 스위스는 중립을 지켜낼 수 있었다.



제1차 대전 (1914년~1918년)

'보불 전쟁' 당시처럼 프랑스-독일-스위스 국경에 배치하여 중립을 지켜낸다. 영세중립을 표방하다 독일의 침략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되어버린 벨기에와 극명히 대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제2차 대전 (1939년~1945년)

히틀러가 동맹국 '이탈리아'의 최단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스위스를 접수하려 하자 스위스 국민들은 '앙리 기상' 장군의 영도 하에 똘똘 뭉쳐 최악의 경우 터널과 도로를 파괴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히틀러의 침략 욕구를 포기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처럼 역사를 살펴볼 때 스위스는 지금까지 자국을 침략한 외세에 대해 끝까지 저항했고, 대부분 승리를 거두어 주변의 외세도 스위스의 무장중립을 인정하게끔 만들 수밖에 없는 피의 투쟁을 벌여 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중립을 표명하면서도 철저한 무장을 통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스위스의 노력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반면교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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