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그들이 탄피를 회수한 이유

여러 이유 때문에 사격 훈련 후 반드시 탄피를 회수한다.



재활용 목적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총기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론적으로 훈련에 투입된 총탄과 사격 후 회수된 탄피의 숫자가 같으면 유출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격장에서 훈련 관련자들이 탄을 분배하고 사격 후 반납하는 탄피수를 일일이 맞춰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창군 초기부터 있어왔던 전통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38선 전역에서 기습 도발을 감행했다. 이때 서울로 통하는 주요 축선인 임진강 남단의 파주 지역을 방어하던 부대는 제1사단 13연대로 예하 2대대와 3대대는 38선을 경계 중이었고, 1대대는 후방에 예비대로 주둔 중이었다.


훈련 도중에 전쟁을 맞게 된 1대대는 사전 계획에 따라 문산 동북방에 있는 파평산에 준비된 진지로 이동하여 고지를 선점하고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당시 제1대대는 탄약을 전혀 휴대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차량으로 10분 정도 거리의 임진나루터에 탄약고가 있어 곧바로 추진이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지 점령 후 상당 시간이 경과하고, 적들은 점점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탄약이 도착되지 않자 초조해진 대대장은 연대 본부에 재차 독촉하였다.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들은 연대 군수 주임은 깜짝 놀라 탄약고로 달려갔다.



그는 제1대대의 요청을 받자마자 차량을 배차하고 담당자에게 탄의 반출을 지시해 놓았기에 파평산 진지에 탄약이 이미 도착했을 것으로 보고 다른 업무를 보던 중이었다.



헐레벌떡 탄약고에 달려간 군수 주임은 인근에 탄약을 수송할 트럭이 늘어서 있는데 이상하게도 화물칸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출발은커녕 탄약 적재도 이루어지지 않은데 놀라 탄약고 안으로 들어가서 본 모습은 기절초풍할 상황이었다.


탄약 장교 이하 전 장병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탄약 상자를 모두 뜯어 헤쳐 놓고 탄알을 일일이 세고 있었던 것이다. 전면전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모르고 있던 그들은 제1대대에게 공급할 탄약이 훈련용이라고 판단하여 이전처럼 일일이 수량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란 군수 주임은 담당자에게 전시 상황임을 알려주고 그제서야 차량에 탄약이 신급히 적재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보급을 받은 제1대대가 각개 병사에게 탄 분배를 완료한 시간이 10시 30분경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약 1개 대대의 북한군 병력이 고랑포 지역을 넘어 파평산 일대에 출몰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탄약으로 제1대대는 기습 사격을 가하여 간신히 적을 격퇴시킬 수 있었다. 그나마 때맞추어 탄이 공급되었기에 망정이지 어이없이 맨손으로 적과 싸워야 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에피소드는 전시에 기록된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원칙대로 일일이 탄알을 세면서 임무를 수행하던 탄약고 관계자들을 탓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분명히 그들도 실제 상황임을 알았다면 그런 어이없는 행동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전선의 급박한 상황을 모든 예하 부대에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지휘부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제1사단은 전쟁 발발 당시에 동부전선의 제6사단과 더불어 놀라운 선전을 하였던 부대다.


그러한 부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 정도였으니 국군 전체적으로 볼 때 유사한 문제점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전쟁 초기에 선전을 펼치면서도 상부로부터 명령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전황을 오판하였던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일로만 덮어두지 말고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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