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불모지였던 한국이 반세기 만에 이뤄낸 쾌거
- DAILY TALK
- 2018. 8. 18. 09:00
우리나라의 첫 올림픽 출전은 1948년 7월, 제14회 '런던올림픽'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같은 해 8월이었으니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올림픽에 출전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7개 종목에 67명을 파견했다.
이후 제15회 올림픽은 우리나라가 6·25전쟁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있던 1952년 7월 '헬싱키'에서 열렸다.
당시 대한 체육회는 1951년 6월 17일, 부산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기총회를 열어 다음 해로 다가온 헬싱키 올림픽에 대비하는 새 집행부를 구성했고, 이를 계기로 1951년 10월 27일부터 닷새 동안 전남 광주시에서 제32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다.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는 경기장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던 탓에 광주시의 광주서중과 광주고, 광주사범학교 운동장을 중심으로 어렵사리 치러진 이 대회에는 15개 종목에 걸쳐 4천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1952년 2월 14일부터 25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 한국은 선수단을 파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52년, 남북 간의 휴전회담이 시작됐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남북이 대치했던 접촉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지리산 공비 토벌이 한창인 뒤숭숭한 때였으나 이해 1월 '에이버리 브런디지' IOC 위원장이 "한국이 헬싱키 올림픽에 참가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해 왔다.
국회는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라고 정부에 건의했고, 출전 경비를 마련하고자 전쟁 중에 대대적인 모금운동까지 벌였다. 이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미군이 한국 선수단 파견 비용 모금 운동을 벌였고, 해외 동포들의 성금도 들어왔으며, 국회의원들도 세비의 10% 이상을 각출했다.
5사단 장병들의 480만 원을 비롯해 국군 장병들이 성금을 모았고, 미 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7천 달러씩 두 차례나 성금을 내놓았다. 정부는 여비를 부담하기로 했으며 서울대학이 140만 원, 내무부가 78만 원을 내놓는 등 거국적으로 성금이 모아졌다.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과 그의 외아들
이렇게 모인 성금으로 육상과 역도, 복싱, 레슬링, 승마, 사이클 등 모두 44명의 선수단이 '최순주' 단장 인솔 아래 6월 12일 부산 수영비행장에서 항공편으로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서 머문 뒤 6월 30일 헬싱키에 도착했다.
헬싱키 올림픽에는 소련을 비롯해 공산화된 동유럽 여러 나라들이 처음으로 출전했으나 중국과 북한은 출전하지 않았다. 한편 소련은 자기네 선수들이 서방 자유 국가 선수들과 접촉을 원하지 않으니 공산권 국가의 선수촌을 따로 지어 달라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1952년 7월 19일부터 8월 3일까지 열린 헬싱키 올림픽에서 한국은 역도에서 '김성집', 복싱에서 '강준호'가 각각 동메달을 차지했다.
김성집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2개 차지한 선수가 됐고, 마라톤에서는 최윤칠이 올림픽 기록을 깨뜨리고도 3위인 구스타프 얀손(2시간 26분 7초)에게 29초 뒤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로부터 29년이 흐른 1981년 9월 30일 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 올림픽 위원장의 "서울, 코리아" 발표에 온 국민이 환호했다. 드디어 우리나라가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순간이었다.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은 160개국, 1만 3천6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당시로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지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이자 첫 번째 동계올림픽인 평창 올림픽이 개최됐다.
평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프랑스의 안시, 독일의 뮌헨을 제치고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알펜시아 스키점프 센터
이로써 대한민국은 과거 전쟁의 고통 속에 올림픽 출전 여부도 불투명했던 나라가 불과 60여 년만에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동·하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나라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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