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파병된 미 특수부대의 첫 번째 작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이틀이 지난 1950년 6월27일, 당시 미 해·공군의 참전이 결정돼 있었지만, 이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 국군의 전력만으로는 북한군 T-34 전차를 막을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결국 28일 개전 4일만에 서울은 함락됐다.



이후 한강을 사이에 두고 국군은 치열한 공방을 거듭하며 방어전투를 수행했고, 이로써 미 지상군이 참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맥아더는 30일 밤에 미 국무장관, 국방장관, 각군 장관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트루먼 대통령의 지상군 참전 승인을 받았다.


이어 찰스 B. 스미스 중령이 406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대전으로 파병된다. 이후 제52포병대대가 합류하면서 스미스 부대는 '특수임무부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1950년 7월5일 오전 8시, 미군의 첫 포탄이 한반도 내에서 발사되었고, 오산 방면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T-34 전차의 전면, 측면 후면 등에 22발의 로켓탄이 명중한다.


그런데...



북한군의 전차는 미동조차 없었다. 미군이 보유한 75㎜ 무반동총, 2.36인치 로켓, 105㎜ 곡사포 중 그 어떤 것도 전차에 피해를 주지 못했다. 40여 분만에 죽미령 고개를 넘어 오산으로 전차 33대가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이 전투는 미군에게 큰 충격을 줬다. 보병 진지를 지나가는 북한군 전차를 보낸 미군 병들은 "아마 저 친구들이 우리들을 못 알아보았기 때문에 지나갔지, 미군이 왔다는 사실을 알면 되돌아 갈 것이다."라는 생각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 미군 부사관은 "로켓탄이 선두전차의 포탑에 맞았으나 끄떡도 하지 않아 마친 전함같이 커보였다"고 증언했을 정도로 미군은 전의를 상실했다. 병사들은 사격명령을 외면하고 진지를 이탈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북한군 전차 두 번째 대열이 죽미령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선두에 선 전차를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를 노려 스미스 부대는 총 공세를 퍼부었고, 전차 4대 완파, 3대 반파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미군의 피해도 컸다. 보병용 차량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포병 차량도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또 전차의 포격으로 보관하고 있던 300여 발의 포탄이 모두 폭발하고 말았다. 또 전차의 포격에 105㎜ 곡사포가 파괴되고, 20여 명이 전사했다.


북한군의 전차부대가 죽미령을 지나간 지 2시간 후, 스미스 부대는 3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접근하는 북한군 보병 4,000여 명의 행렬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이 전방 1㎞에 도달하자 스미스 부대는 종대 후미에 포격을 가했다. 4.2인치 박격포, 75㎜ 무반동총의 화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고, 초기 전황은 대 성공이었다. 그러나 선두에 있던 전차가 후방으로 되돌아와 미군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고, 차량에서 하차한 북한 보병들은 논밭으로 흩어졌다.


이어 북한군들은 수적 우위를 앞세워 스미스 부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3시간 동안 3면에서 좁혀오는 북한군을 상대하며 탄약도, 병력도 모두 소진했다. 더 버틴다면 전멸할 게 뻔했다.



결국 스미스 부대는 퇴각하기 시작했다. 고지에서 아래로 내달리며 일부 병사들은 철모도, 소총도 모두 던져버렸다. 또 무게가 나가는 무기들은 모두 남겨두고, 부상자와 전사자들도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포병부대는 병력피해가 크지 않았으나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박격포를 가져가는 것은 시간상 무리였다. 때문에 조준경, 마개쇠, 방향틀만 떼내 쓸 수 없도록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 전투로 540명의 스미스 부대원 중에서 150명이 전사하고, 포병대대 소속 장교 5명과 병 26명은 실종되어 최초로 투입된 미군 부대의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미군이 가진 대부분의 장비는 북한군의 손에 들어갔으나 북한군 4사단도 42명의 전사자와 85명의 부상자, 전차 4대를 손실했다.


최초의 접전 치고는 쌍방간에 피해가 많았다. 스미스 부대는 이와 같이 많은 사상, 실종자를 내면서 적의 진격을 약 7시간 지체시켰던 것이다. 7시간을 벌기 위한 인명 피해와 빼앗긴 지역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이 전투로 미 지상군은 첫 전투를 치렀으며, 북한군은 미군 참전을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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