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기밀이었던 이스라엘 격추왕의 실체

1947년 주변 아랍국들에게 둘러싸인 불리한 입장에서 아주 약한 국력으로 독립한 이스라엘은 독립선언 이후 여러 번이나 민족의 사활을 건 전쟁을 했었다.



지금은 국력이 강해지고 주변의 정치적 역학관계도 변해서 '팔레스타인' 인들을 학대하는 폭력 국가의 이미지가 강해지고 있지만 '10월 전쟁'이라는 큰 전쟁을 치르기 전의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과 크고 작은 생존의 싸움을 버텨내야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 장벽


이스라엘은 1947년 독립전쟁부터 1956년 수에즈 전쟁, 1967년 6일 전쟁 등 여러 전쟁을 치르면서 적 전투기와 공중전도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 적기를 다수 격추한 에이스 조종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랍 권과 치열한 열전과 냉전을 거듭하는 동안 테러의 위협에 무수히 노출되었던 이스라엘은 테러 가능성 때문에 그런 에이스의 신원을 다년간 기밀로 했었다.



이후 아랍 제국들과 관계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테러의 위협도 줄어들자 이스라엘 공군 에이스들의 신원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격추왕의 실체 또한 드러나게 된다.


그는 이스라엘 공군에서 1963년부터 1997년까지 34년간 근무했던 '지오라 에번'이라는 조종사인데, 총 적기 격추 수는 17기 이며 격추한 적기는 모두 이집트 공군 기로 미그, 수호이 전투기들과 M-8 헬리콥터 등이었다.


지오라 에번


※ 2차 세계대전 후 한국전 최고의 에이스인 멕코넬 대위가 16기, 월남전의 에이스 리치 대위와 커닝햄 대위의 기록이 5기 임을 새겨보면 대단한 기록임을 알 수가 있다.


그는 1938년 이스라엘의 시골에 위치한 '네그바 키부츠'에 태어나서 평범한 시골 어린이로 성장하였다. 소년기 때부터 비행기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고, 영국 전투기 에이스들의 무용담을 읽으며 조종사의 꿈을 키워갔다.


18세가 된 '지오라'는 이스라엘 국방군에 입대하여 조종사의 꿈을 이루고자 비행 학교에 지원했지만 입학 신체검사에서 심장계통에 작은 이상이 발견되어 단념해야 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비행기에 탈 수 있는 공수 부대에 지원했다.


이후 지오라는 공수부대에서 낙하 시범 팀 '스카이 다이버 팀'에 선발되었는데 덕분에 700회에 가까운 낙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공수부대에서 3년간 복무하고, 제대한 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답답한 시골과 농사일을 참기가 힘들었고 결국 기회를 보다가 재복무를 신청해서 다시 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비행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컸던지라 군 복무를 하면서 다시 비행학교에 지원했다. 하지만 다시 심장 계통 문제가 불거져 나와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이에 낙담하지 않고, 지오라는 미 공군 군의관이자 심장 전문의에게 그의 신체검사 관련 모든 기록과 엑스레이 사진을 보냈다.


한참 뒤에 그 미 공군 군의관에게서 "그의 모든 것을 다 검토했는데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는 발견할 수가 없다."는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지오라는 이 회신을 들고 전투기 부대로 전출시켜 달라는 투쟁을 시작했다.


갖은 장애물을 다 헤쳐가며 드디어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공군 참모총장 '에제르 와이즈만' 장군과 독대 할 수 있었고, 결국 그는 그토록 원하던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있었다. 7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에제르 와이즈만은 이스라엘 7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지오라는 조종 훈련생 때부터 너무 시력이 좋아서 '매의 눈'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24마일의 원거리에서도 적 전투기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전투기 레이다 탐색 거리 밖에 있는 적기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통 조종사가 8내지 12마일 거리에서나 적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비하면 그의 시력은 두세 배 좋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격추한 17기의 전투기 중 처음으로 격추한 전투기는 이집트의 '수호이7'기로써 6일 전쟁이 발발했던 1967년 6월 6일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 거둔 것이다.



이후에도 1969년-1970년 동안의 '마멸전쟁'에서 '미그17'기 한 기와 '수호이7'기 한기, 그리고 이집트 최신형 '미그21'기 두 기를 격추하였다. 17기 중 12기는 1973년 발발했던 '욤 키프르 전쟁'때 거둔 전과인데 놀라운 점은 그 12기 중에서 8기를 단 26 시간 동안 격추했다는 것이다.


추측해보면 그가 최대의 전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이집트가 개전 직후 기습의 우세함을 활용하기 위해서 전투기 부대를 대량으로 동원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1973년 10월 24일 '그레이트 비터 레이크' 상공에서 3기의 '미그21'기를 격추해서 적기 격추 수를 17기로 늘렸다.


미그21기



전후 그는 이스라엘의 최고 무공훈장인 메달 오브 아이디얼 훈장을 수여받았는데 이 훈장은 한국 최고 훈장인 태극 무공 훈장에 해당한다.


그는 미라주 전투 비행단장과 크피르 전투 비행단장을 역임했었고, 1988년 대령 계급으로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1997년까지 현역과 예비역으로 이스라엘 공군에 복무했으며 그의 60세 생일날 F-16 조종을 끝으로 조국 수호의 일선에서 은퇴 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