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638번의 암살공작을 피해 간 행운(?)의 사나이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방법으로 시도되었던 암살 시도는 미국 CIA가 195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638가지 방법으로 시도했던 쿠바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암살 작전이었다.



1958년, 플로리다 해안에서 불과 180k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공산국가 쿠바는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1962년에 있었던 쿠바 핵미사일 위기는 미국으로 하여금 쿠바의 공산 독재 지도자 카스트로를 어떻게 해서든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1958년 쿠바 공산혁명 직후 쿠바를 탈출한 1,500여 명의 망명자들을 모아 '제2506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 이 부대를 동원해 쿠바 침공을 감행했지만, 부대원들이 몇 달 전부터 작전 내용을 떠벌리고 다니는 등 형편없는 보안 유지로 인해 상륙과 동시에 대부분 전멸하고 상당수가 포로로 잡히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이후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과 더불어 소련이 쿠바의 지킴이 역할을 자초하고 나서자 군사력 동원을 통한 카스트로 공산정권 축출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국은 카스트로를 암살해 버리기로 결심하고,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 방법은 참신하다 못해 기상천외했다.



20년 넘게 쿠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활약했던 '파비안 에스칼란테'는 지난 2006년 펴낸 "카스트로를 죽이는 638가지 방법"이라는 저서에서 미국 CIA에 의해 자행된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무려 638회에 달했고, 여기에는 단순한 방법부터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시도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그 중 애연가였던 카스트로의 시가 담배에 미량의 폭약을 넣는 방법은 애교 수준에 불과했다. 스쿠버 다이빙을 즐겨했던 카스트로의 취미 생활을 이용해 해파리 등 수중 연체동물의 촉수에 독을 발라 카리브 해에 풀어놓는가 하면, 그가 자주 다이빙을 즐기는 지역에 알록달록한 조개 모양의 폭발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해외 순방에 나서면 호텔 직원을 포섭하여 암살을 시도하거나 직접 암살요원을 보내 그가 자주 마시던 밀크쉐이크에 독약을 타거나 소파에 폭발물을 숨겨 놓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CIA가 벌였던 카스트로 암살작전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전은 바로 카스트로의 옛 애인이 동원되었던 작전이었다.



19세의 나이에 카스트로를 처음 만나 9개월 간 동거하며 카스트로의 아이까지 임신했던 '마리타 로렌츠'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어 강제로 낙태를 당했고, 카스트로와 강제로 이별해야 했다.



CIA는 카스트로에게 상처 받고 버림받아 복수심에 불타 있을 로렌츠가 암살 작전에 더할나위없이 제격이라고 판단, 암살 작전에 성공하면 안전 보장과 함께 200만 달러를 현찰로 주겠다고 제안했고, 그녀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작전에 투입됐다.


그러나 로렌츠는 카스트로가 머물던 아바나 호텔방에 들어서자마자 CIA가 준 독약캡슐을 버리고 카스트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이에 카스트로는 로렌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했지만, 로렌츠는 카스트로를 차마 쏘지 못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스트로는 로렌츠를 처벌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으로 돌아간 로렌츠가 그 이후에도 반 카스트로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이후 카스트로는 자신과 닮은 사람을 행사에 내보내거나, 20여곳의 은신처를 만들어 지내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암살 시도를 피해갔다. 후에 카스트로는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은 수많은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은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결국 40년에 걸친 미국의 카스트로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편안한 여생을 즐기다 그의 나이 90세 되던 해인 2016년 11월 25일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사망하자 일부 미국 네티즌들은 "미국이 망하기 전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한 파델 카스트로가 '트럼프'가 당선되자 세상을 떠났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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