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 무궁한 영광을 충성하는 세계의 외인부대들

특정 국가의 군대에서 싸우는 외국인 부대, 통칭 '외인부대'는 말 그대로 특정 국가를 위해 싸우는 외국 국적자들로 이루어진 부대다.


가장 잘 알려진 외인부대의 원조는 스위스 용병으로, 먹고 살 것 없는 척박한 산악지역에 자리 잡은 가난한 스위스인들이 일자리를 위해 프랑스, 스페인, 나폴리 왕국 등에 소속되어 싸웠다.



특히 이들은 15세기까지 '용병 산업'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현재에 들어서도 교황청에 설치된 스위스 근위대는 여전히 건재하며, 중대급에 불과하지만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정복을 입고 '도끼'와 '창'을 제식 병기로 든 채 교황의 경호를 담당한다


스위스 근위대



   외인부대의 대표주자 '프랑스 외인부대'


18~19세기에는 열강의 식민지 경쟁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외인부대들이 창설됐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외인부대는 특정 국적자만을 따로 모은 부대가 아닌 '프랑스를 위해 싸우려는 모든 외국인'을 모아 만든 독특한 부대다.



또 프랑스 외인부대는 프랑스 국적자에게 문호가 열려 지금도 약 24%는 프랑스인으로 채워진다는 점도 특이하다. 한국인으로 프랑스 외인부대에 근무한 기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여 명이 복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도 50여 명 정도가 복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입대시에 프랑스에 대한 충성 대신 부대에 대한 충성만을 맹세하는 특이한 성격은, 현대 국가의 군대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핵심적인 부분에는 투입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격 탓에 현재 프랑스의 외인부대는 UN 국제평화유지군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메리칸 카우보이 '미국의 외인부대'


중·일전쟁 당시 중화민국의 빈약한 항공력 때문에 일본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상황이 발생하자 장개석 총통은 미국에 전투기 수출을 요청했고, 중립국 입장에서 무기를 판매할 수 없던 미국은 영국에 항공기를 수출했지만 영국 정부가 인수를 거부한 형태로 반품 받은 후 중국에 보내 일본의 눈을 속이는 방법으로 'P-40 워호크' 항공기를 중국에 인도했다.


심지어 조종사도 제대로 양성되어 있지 않은 중국을 위해 미군 현역 조종사 중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전역 처리'를 한 후 민간인 신분으로 중국에 파견했는데, 이들은 미국의 '클레어 리 셰놀트' 대령을 중심으로 중국 쿤밍에 자리를 잡고 일본을 상대로 항공전을 실시했다.


클레어 리 셰놀트' 대령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보급 부족과 부품 공급 문제를 겪었지만, 출격 때마다 항공기 도색을 새로 하고 번호를 다시 그려 넣는 방법으로 보유 항공기 대수가 많은 것처럼 위장하여 일본군을 위협했다.


중화민국 국민혁명군 소속으로 활약하던 이들은 1941년 12월, 진주만 사건을 기점으로 미국 정부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1942년 7월 자로 부대를 해체하고 미 육군항공대 제 23전투 비행단으로 재편됐다.



   신생 독립국을 위한 에이스와 베테랑의 집결 '마할'


2차 세계대전 직후 건국한 이스라엘도 독립전쟁을 치르면서 국내외 자원자로 창설한 '마할'이라는 부대를 운용했다.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출신인 미국인과 영국인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이 부대는 총 58개국 출신 3천 500명 가량이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에 참전했다.


마할 Mahal


이들은 해외 거주 유대인이거나 기독교 신자라서 참전한 경우도 있었고,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동원 해제로 군을 떠나게 된 이들이 이스라엘의 초청을 받았거나 스스로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마할'의 리더 역할을 한 미 육군 대령 출신의 '데비드 미키 마커스' 장군은 초창기 이스라엘 군의 편제와 구조를 설계하고 신생 이스라엘의 첫 준장이 되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이 끝나면서 이들 상당수는 본국으로 귀국했고, 일부는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이 외에도 영국군이 네팔 출신을 모아 운영하는 '구르카 여단' 등도 유명한 외인부대로, 이들은 특히 한국전쟁 당시 지평리 전투에서 1개 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격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르카 용병


이렇듯 현대에도 여전히 외인부대가 곳곳에서 운영 중에 있지만, 사실 요즘에는 다문화가 정착되고 국가 간 이동이 쉬워졌으며, 복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최초 ‘외인부대’의 탄생 목적은 많이 퇴색했다. 하지만 대부분 각국에서 전투 유경험자들이 모인다는 점, 그리고 독특한 군기와 복무 목적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외인부대는 그 존재의 의미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21세기가 된 오늘날에는 오랜 전통이 있는 외인부대 외에 새로 창설되는 부대가 거의 없고, 기존의 부대도 임무가 크게 한정적이 됐다는 점을 본다면 이들 외인부대는 다소 상징성 때문에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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