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비군 3만의 스웨덴이 방산 강국에 등극한 사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가 아무리 편을 나누어 치고받았지만 그래도 지구상에는 중립을 유지하였던 국가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독일에 우호적인 경우도 있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칠레 등이 대표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전후 단죄를 두려워 한 독일의 많은 전범들이 이들 나라로 도피하였다. 이러한 전범들의 도주극은 부패한 남미 정권의 공공연한 협조와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아무리 악독한 범죄자라도 뇌물만 제공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권과 비자를 마음대로 내주었다.


아르헨티나로 도주해 숨어 살다가 1960년 이스라엘이 비밀리에 납치하여 유태인 학살 혐의로 단죄당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대표적이다.


이와 달리 전쟁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고급 인력이었던 독일의 엔지니어들은 비록 공개적인 행보는 아니었지만 많은 환대를 받으면서 망명하였다. 경우에 따라 자신들이 가기를 원하는 국가를 골라서 망명하여 독일에서 연구도중 패전으로 중단된 프로젝트를 계속 수행했다.


때문에 미국과 소련의 제1세대 전투기들이 등장했을 때 그동안 항공 산업이 특별히 앞서 있거나 기술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국가들에서 미국의 F-86, 소련의 MiG-15와 맞먹는 제트기들이 생산되었다.


미국의 F-86


소련의 MiG-15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전쟁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이 전후 제식화한 'J-29 터난' 전투기였다.


J-29 터난 전투기


그 모양은 오히려 독일 나치에서 개발하던 '포케볼프 Ta-183'의 재현이 아닌가 할 정도로 똑같았는데, 스웨덴이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어느 날 뚝딱하고 만들었다고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닮아 있었다.


포케볼프 Ta-183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스웨덴 전투기의 역사는 오늘날 최신예 '그리펜' 전투기까지 기술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펜 NG 전투기


한편 종전 전후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던 독일 엔지니어들도 상당수였는데, 이들 중에는 포케볼프의 유명한 엔지니어인 '쿠르드 탕크'도 있었다. 그는 전쟁 당시 '도살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Fw-190'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기를 제작하였던 인물이었다.


탕크는 아르헨티나의 코르도바에서 옛 포케볼프 직원들을 규합하여 종전으로 중단된 제트전투기 연구를 재개하였다.


독일에서보다 여건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르헨티나 당국의 관심과 전적인 지원하에 일사천리로 개발이 이루어져 1947년 '풀퀴 I'로 명명된 실험기가 비행에 성공하였고, 탕크는 이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제트전투기 제작에 착수했다.



마침 아르헨티나 정부가 MiG-15의 심장이 되기도 하였던 고성능 롤스로이스 넨 엔진을 영국에서 도입하는데 성공하여 이를 장착한 제트전투기 '풀퀴 II'가 1950년 7월 비행에 성공하였다.


I.Ae. 33 풀퀴 II


적어도 드러난 성능만으로도 F-86이나 MiG-15와 맞먹는 당대 최고 수준의 전투기였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미국, 소련 등과 더불어 초기 제트전투기 개발의 주역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르헨티나의 거침없는 행보에 놀란 미국이 거의 무상에 가까운 가격에 F-86 전투기를 공급헤 주겠다고 약속하며 양산을 막았다. 덕분에 풀퀴 II는 5기를 마지막으로 개발이 종료되면서 그 생을 마감하였다.


이러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결정에 실망한 탕크는 이후 인도로 옮겨가 인도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HAL HF-24' 제작을 이끌었다.


HAL HF-24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 과학자들을 수용하여 제트전투기 개발에 나섰던 스웨덴은 오늘날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전투기의 강국이 되었지만 잘못된 오판으로 좋았던 기회를 스스로 날려 보낸 아르헨티나는 단지 박물관에 전시 된 과거의 흔적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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