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6에 밀려 5년 만에 퇴물로 전락한 비운의 소총

'군대'는 크게 사람과 무기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 다양한 무기를 보유하는데, 그중 개별 병사들이 보유하는 소총은 가장 기본이 되는 무기다.



결론적으로 소총은 개별 병사가 단독으로 쉽게 휴대하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와 무게가 제한된다. 그런데 총탄을 발사해 목표물을 타격하는 종류의 무기는 일단 크고 무거워야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소총은 군이 사용하는 무기 중 가장 위력이 약한 무기다.

이처럼 크기와 용도가 제한되다 보니 현대식 소총의 기본 개념과 외형은 1841년 '드라이제 소총(후장식 소총)'이 탄생한 후 지금까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총 뒤편으로 탄을 넣을 수 있는 최초의 후장식 소총


하지만 개념과 외형은 비슷해도 당연히 소총의 성능은 꾸준히 향상돼 왔다.

그중 가장 커다란 변화라면 제2차 세계대전 말을 기점으로 노리쇠를 일일이 작동시켜 한발씩 사격하는 '볼트액션 소총'에서 연사가 가능한 '자동 소총'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차이 같지만 군의 주력 소총이 단발에서 연사로 바뀌는 데 거의 100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블트액션 소총


1925년, 미군은 기존 제식 소총인 'M1903' 대체 사업을 실시했다.

이때 자동 소총을 염두에 뒀지만 기술적 난제와 비용 문제 때문에 노리쇠 작동 없이 방아쇠만으로 사격이 가능한 반자동 소총으로 개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동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1928년, 기존 7.62×63㎜ 탄을 대폭 축소한 7×51㎜ 탄을 사용해 반동을 잡은 'T1'이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됐다.



테스트 결과 위력이나 사거리에서 크게 문제가 없음이 확인돼 관계자들을 흡족하게 만들었으나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맥아더'가 도입을 거부했다. 엄청나게 재고가 많은 기존 탄 대신에 별도의 탄을 사용하는 것이 보급체계에 문제가 많다는 이유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33년, 기존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T3'가 정식 소총으로 채택돼 1936년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M1 개런드 소총'이다.


M1 개런드 소총



독일의 Kar98, 소련의 모신나강, 영국의 리엔필드처럼 당시 주력 소총은 분당 10발 내외를 발사할 수 있었지만 M1은 60발 정도 사격할 수 있었다. 성능 면에서 M1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M1은 탄생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커다란 도전을 받았다. 전쟁 말기에 총의 역사를 새롭게 쓴 독일의 'StG44'가 등장한 것이었다.


StG44


StG44는 불발로 끝난 T1처럼 보다 작은 규격의 탄환을 사용해 반동을 줄였지만 화력과 연사력은 뛰어났다. 이런 종류의 소총을 '돌격 소총'이라 칭하는데, 전후 너무나도 유명한 'AK-47'과 'M16'의 탄생에 영향을 줬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냉전 시대가 개막하면서 소련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소총으로 평가받는 AK-47을 내놓자 미국도 더 이상 M1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련처럼 전혀 새로운 개념의 돌격 소총을 만들려 하지 않고, M1에 대한 신뢰가 너무 크다 보니 이를 자동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렇게 해서 1959년 M14 자동소총이 탄생했다.


M14 자동소총


하지만 월남전에서 곧바로 문제가 드러났다.

기본적으로 M1을 자동화한 것이다 보니 연사 시 반동이 심했고 오히려 무게와 크기가 늘어나 휴대가 불편했다. 결국 1964년 기존 7.62×63㎜ 탄을 대폭 축소한 5.56×45㎜ 탄을 사용하는 M16이 대항마로 결정되면서 M14는 5년 만에 2선으로 물러났다.


M16


결과론이지만 만일 30여 년 전 맥아더가 T1의 개발을 승인했다면 M14는 지금도 주력으로 사용되는 성공적인 자동소총으로 남아있을지 모른다.


1949년 실전 배치된 AK-47이 여전히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총이고, 현재 미군의 M4 소총이 M16을 개량한 소총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주 잘 만든 총은 오랫동안 사용될 수 있다. 비록 맥아더에 의해 좌절됐지만 T1은 그런 역사를 시작할 만한 자격이 충분했던 것이다.


M16보다 총신이 더 짧아진 M4 소총



하지만 분명히 M1은 탄생 10년 후에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최고의 소총이었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30년 후까지 정확히 예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당시 맥아더의 결정이 선견지명이 없었다고 비판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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